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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산부들은 “적어도 자애명상 시간만큼은 온전히 태아에게만 집중하면서 사랑을 보낼 수 있었다”며 진지하게 수행에 임했다. |
심장이 2개다. 뱃속에 또 다른 심장이 뛴다. 임산부는 그렇게 몸속 새 생명을 느낀다. 그러나 고마움보다 걱정이 앞선다. 손가락, 발가락은 5개씩 있는지 눈, 귀, 코, 입도 안녕한지 늘 염려스럽다. 특히 엄마의 스트레스가 정신건강에 독이 되는 건 아닌지 스트레스다. 인터넷과 책을 뒤지며 글로 배운 태교로는 부족하다. 태아와 마음을 교감하고 싶지만 서툴다. 조용한 곳에서 태아와 마음을 나누고 싶어도 불러오는 배를 부여잡고 막상 먼 곳으로 떠나기도 부담스럽다. 태아와 엄마의 심장 2개가 둘이 아님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 화제다. 서울 목동에 위치한 도심 속 수행도량 조계종 국제선센터에서 실시 중인 ‘태아에게 해주는 자애명상’이다.
‘태아 자애명상’은 국제선센터의 ‘임산부를 위한 데일리 템플스테이(Daily Templestay)’에서 중심 프로그램이다. 멀리 이동하기 어려운 임산부를 위한 도심 속 수행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다. 자애명상으로 사랑의 마음을 충만히 채우고, 임신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목적이다. 총 4주 코스로 좌선인 자애명상과 행선인 걷기명상이 주를 이룬다. 스님과 차담, 임산부를 위한 사찰음식도 고정이다. 여기에 매주 합장 반배로 하는 108배 108염주 꿰기, 탁본 뜨기, 단청 그리기가 한 가지씩 진행된다. 특히 마지막 주엔 남편과 함께 가족의 인생그래프를 그린다.
‘부모은중경’과 ‘자애경’ 독송
제철 사찰음식으로 심신보양
3월13일 오후 전유정(35), 최민선(34), 고성은(34)씨 등 3명의 임산부들은 행선 중이었다. 손을 태아가 있는 배 부분에 가지런히 모으고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디뎠다. 얼굴엔 온화한 빛이 서렸다. 태아에게 깊은 애정을 보내며 온정신을 집중했다. 30분이 지나자 좌복에 앉았다. 가부좌가 어려운 탓에 좌복 위에 쿠션을 깔고 편히 앉았다. 눈을 감고 태아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냈다. 전씨는 ‘기쁨이(태명)’에게 최씨는 ‘뿅뿅’에게 고씨는 ‘하루’에게.
자애명상은 위빠사나에 앞서 마음을 보호하는 예비 수행이다. 특징은 자신과 남을 보호하는 것으로 나아가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 데 있다. 궁극적으로는 중생을 한없이 어여삐 여기는 4가지 마음인 사무량심(四無量心)을 키우는 수행이다. 즉 사랑하고(慈), 불쌍히 여기며(悲), 기뻐하고(喜), 내려놓는(捨) 자비희사(慈悲喜捨) 마음을 고요히 유지하며 4가지 마음의 정서적 균형과 안정을 꾀하는 것.
‘태아 자애명상’은 행복을 바라는 마음(자애)을 태아에게만 집중하는 수행이다. 짧은 문장 하나를 발원문으로 삼고 간절한 마음을 반복해 염송하며, 태아에게 사랑을 보내야 한다. 외부 소음, 갑자기 일어나는 잡념으로 방해를 받는다면 곧바로 발원에 집중하는 게 포인트다. 이는 국제선센터 국제차장 천조 스님이 고안한 수행이다. 스님은 미얀마에서 6년 동안 위빠사나수행을 배우고 실참 해왔다. 이 경험을 토대로 태아에게 자애명상을 적용했으며, 직접 지도법사로 임산부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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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산부들은 행선하면서도 태아에게 깊은 애정을 보냈다. |
천조 스님이 가만히 목탁을 쳤다. 임산부가 태아와 마음으로 교감하는 순간을 갑자기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자애명상이 끝나자 ‘부모은중경’을 함께 봉독했다. 임산부들이 소리 내어 읽는 ‘부모은중경’은 천조 스님이 발췌한 내용이었다. 천조 스님은 지옥 등 안 좋은 단어를 빼고 부모님의 10가지 크신 은혜를 간추렸다. 잉태하고 수호한 은혜, 낳을 때 고통 받은 은혜, 아기를 낳고 근심을 잊은 은혜, 쓴 것은 삼키고 단 것 먹인 은혜, 마른자리에 뉘인 은혜, 젖을 먹여 기른 은혜, 더러움을 씻어준 은혜, 먼 길 떠난 자식을 염려한 은혜, 끝없이 사랑한 은혜 등이다. 여기에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향해 무한한 자비심을 펼쳐야 한다”는 초기불교경전 ‘자애경’ 내용을 덧붙였다. 태아가 부모가 됐을 때 스스로 부모의 은혜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한 태교라는 게 스님 설명이다.
1월과 2월에 실시한 1차 자애명상은 높은 호응을 얻었다. 한 임산부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마음 속 깊이 새겼고, 아기를 위한 명상을 했다는 게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자애명상이 끝나자 스님과 차담이 이어졌다. 차담에서는 1주일 동안 집에서 행한 자애명상을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고씨는 “성별을 알고 난 뒤 자애명상을 하니 아기와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며 “오로지 아기와 교감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집에서 매일 30분씩 행선과 자애명상을 했다는 최씨는 “몸 상태가 안 좋아 살짝 두려움이 있었는데 사라졌다”고 말했다. 임신 뒤 우울증을 겪다 처음 자애명상을 접한 전씨는 “감회가 새롭다. 직장 다니느라 태교를 제대로 못했다”며 “아기와 공감할 기회가 없었는데 서로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천조 스님은 “임신 중에는 남편에 대한 원망도 말고 좋은 말과 생각, 행동을 해야 한다”며 “자애명상으로 사무량심을 길러 마음을 가꾸는 것은 아기를 위한 선물이자 자신을 위한 수행”이라고 강조했다. 02)2650-2200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