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가르침 만나기 전엔
뿌리 없는 수초와 같은 생활
수행과 나눔, 봉사로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불자가족이 있다. 나이 오십이 다 돼 만난 불교를 통해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어 이전과 달리 행동하는 삶을 살게 됐다고 부부는 말했다. 큰아들과 큰딸은 학업 스트레스와 사춘기의 불안감을 절에 다니면서 해소했다.
불교교리경시대회에 출전한 딸은 수상상금 전액을 조계종 공익법인 아름다운동행에 후원하기도 했다. 박수근(53)·김희옥(52)씨 가정 이야기다.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박수근 김희옥 씨 가정을 지난 12월13일 방문했다.
“왜 더 일찍 불교와 만나지 못했을까요.”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도 하기 전에 박수근 김희옥 씨 가정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부부는 불법과 인연 맺기 전의 상황을 뿌리 없는 수초에 비유했다. 감정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쉽게 휩쓸리며 생활했다면, 지금은 어떤 인연이 다가와도 깊이 뿌리를 내린 바위처럼 중심을 제대로 잡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박수근 씨 가족과 불교와의 본격적인 인연은 2010년 서울 목동에 국제선센터가 개원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전까지 이들에게 사찰이나 불교는 잠시 마음을 쉬었다 가는 쉼터나 여행지에 가까웠다고 한다. 부부는 불심 깊은 부모의 영향을 받아 늘 호감은 갖고 있었지만, 생업에 매진하느라 ‘무늬만 불자’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부처님오신날 사찰을 찾아 등 한 번 다는 것이 신행생활의 전부였다.
그런데 도심 한복판, 그것도 집 가까이에 사찰이 생기자 마치 자석에 끌리듯 일요일만 되면 온가족이 국제선센터로 총출동했다. 부부는 일요법회, 자녀인 박상우(23)군과 윤진(21), 민진(14)양은 청소년, 어린이 법회를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배웠다.
세상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가르침 얻어 하루하루 행복
절에서 스님에게 배운 수행법
대학생활 든든한 버팀목 된다고
부부는 국제선센터에서 첫 법문 듣던 날을 잊지 못한다. “스님께서 ‘눈 덮인 길을 걸어갈 때 아무렇게나 걷지 말아라.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내 마음이 흔들리니까 세상도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던 거죠. 처음엔 이런 중요한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어요. 그때부터 주말마다 절에 다니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배웠습니다. 이제는 진리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삽니다.”
부인 김 씨는 “오십이 다 돼서 불교를 만났지만 아이들은 우리보다 빨리 부처님 제자가 돼 정말 다행”이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그렇게 되면 앞으로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최근 10년 회향을 목표로 기도를 시작했다. 주위 모든 인연에 참회하는 참회기도, 감사기도, 서원기도 등을 각 3년씩하고, 마지막 1년은 회향을 하는 기도로 마무리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는 남편 박 씨도 “관세음보살님이 항상 제 곁에 계신다고 믿는다”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관세음보살’ 한 번 부르면 없던 자신감도 생긴다”며 웃었다.
자녀 모두 교리경시대회 출전
최우수상 특별상 등
우수한 성적 거둬 화제 모아
상금 전액 후원금으로 전달
부부에게 불교가 소중하듯, 상우(23)군과 윤진(21)ㆍ민진(14)양에게도 불교는 특별하다. 특히 큰 아들 상우 군은 재수생활을 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대학입시에 실패한 후 상처를 추스르기 위해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가봤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다. 앞길을 찾지 못해 밤이면 밖으로 나돌게 되고 그러다 늦잠을 자는 생활이 반복됐다. 자연히 부모님과의 마찰도 늘어났다. 어머니와의 말다툼은 끊일 날이 없었다고 한다.
이날 상우 군은 “국제선센터에서 불교공부를 시작하고부터 모든 것이 변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도 어머니는 자신과 똑같이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이다. 혼자서만 분노하는 자신을 대면하게 된 순간 어머니에게 물었다.
무엇이 어머니를 변화시켰느냐고. 돌아온 답은 ‘불교’였다. 불교하면 할머니 혹은 기복신앙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때다. 도대체 불교의 힘이 뭐길래. 머리도 식힐 겸 무작정 짐을 싸 합천 해인사로 떠났다. 당시 절에서는 지관스님 다비식 준비로 분주했다. 일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봉사를 자원했다. 눈 코 뜰 새 없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불교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신을 올바로 보고 싶어 소개를 받아 해인사 종묵스님을 찾아갔다. 상우 군은 스님으로부터 불교의 기본 교리와 수행법을 배웠다. 2개월 동안 절에서 생활하면서 수식관(산란한 마음을 집중시키기 위해 들숨과 날숨을 헤아리는 수행법)과 108배 수행에 집중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 부모님과의 갈등,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이런 모든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현재를 바라보는 힘을 키웠다.
상우 군은 “예전에는 부족한 수능점수를 보면서 ‘왜 그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왜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불교수행을 하면서 늘 현재를 살고 있지만 지나가버린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됐다.
상우 군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현재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알아차리게 됐다”고 말했다. 부처님 가르침이 명약이 된 것이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생도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해인사에서 배웠던 부처님 가르침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중산층 불자 양성하기 위해
도심사찰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둘째 윤진 양은 나눔과 봉사활동에 앞장서 주위의 모범이 되고 있다. 2011년에 불교교리경시대회에서 수상으로 받은 상금 전액을 태국 홍수 피해복구기금으로 후원했다. 당시 본지 보도를 접하고 태국 불자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 직접 불교신문을 찾아 기금을 전달했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주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상금은 주변 소외이웃을 위해 상금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윤진 양은 “만약 상을 타게 되면 필요한 곳에 전액 후원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며 “그냥 쓰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곳에 크게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해 실천에 옮긴 것 뿐”이라고 말했다. 윤진 양은 입시로 바쁜 고등학교 시절에도 매주 빠지지 않고 인근 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할 정도로 나눔에 관심이 깊었다. 복
지관에서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과 새터민 자녀를 대상으로 한 방과후 교실 지도교사로 활동했다.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던 윤진 양은 현재 동국대 불교학부로 진학해 불교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요즘도 윤진 양은 사찰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불교를 배우면서 스스로 주인공으로 사는 법을 배웠다는 윤진 양은 앞으로 교사가 되어 자신이 배운 것들을 청소년들에게 회향하고 싶다고 밝혔다.
우애 깊은 삼남매에게는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삼남매 모두 불교교리경시대회에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이다. 상우 군은 장려상을, 윤진 양은 특별상을, 막내 민진 양은 최우수상을 각각 수상했다. 교리경시대회를 준비하며 불교를 보는 시각을 넓힌 삼남매는 대회에 대한 문의가 있을 때마다 “불교와 역사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며 적극 추천하고 있다.
부부는 이날 도심사찰의 중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중산층 불자를 양성하기 위해 국제선센터와 같은 곳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조용히 혼자서 불교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사찰에서 사람들을 만나 인맥을 넓히고 마음에 맞는 도반도 만나면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역할을 도심사찰이 나서서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부부는 입을 모았다.
3년 전부터는 불교복지시설에 정기후원도 하고 있다. 박수근 씨 가족은 “살아가면서 조금씩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나가면 나누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며 “금액은 적지만 기부를 통해 부족함을 더 채워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불교신문3070호/2014년12월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