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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2월19일 설날 점심시간, 평택 명법사 신도들이 평택역을 찾아 노숙자와 독거노인 등을 대상으로 떡국과 명절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
설날(양력 2월8일)이 1주일여 앞으로 다가왔다. 음력 1월1일이지만 양력이 정착되면서 ‘시작’보다는 ‘만남’의 의미가 두드러진지 오래다.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한 자리에 모여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온정을 나누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사찰 역시 가족 간의 화합과 유대에 기여하고 있다. 사찰에서의 ‘합동차례’는 이제 일상화됐다. 독거노인과 외국인근로자 등 자칫 잔칫날에 소외되기 십상인 사회적 약자들을 초청해 위로하고 다독이는 법회도 많아졌다. 불교계 복지관과 템플스테이 운영사찰들도 따뜻한 설날을 만들기 위해 힘을 보탠다. 갈수록 개인화되고 각박해지는 세태 속에서, 사찰이 온 국민을 위한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분석이다.
설날 당일 아침, 전국 사찰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풍경은 ‘합동차례’ 모습이다. 부처님을 모신 불단 아래 재적사찰 신도들은 각자 조상의 위패를 모셔두고 집안의 평화를 빈다. 한국인 고유의 정서는 전국 교구본사를 비롯해 서울 조계사 봉은사 불광사 국제선센터 등 여느 주요 사찰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사회기류의 변화에 따라 2000년대 이후 재적사찰에서 합동차례를 지내는 세대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1인 가구 및 이혼의 증가 등 전통적 가족문화의 해체가 크게 작용했다. 가족구성원 간의 종교 갈등과 피치 못할 ‘개인사’도 주된 원인이다.
더구나 명절보다는 휴가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제사를 간편하게 치르고 여가를 즐기려는 욕구와 맞물려 사찰 합동차례는 차츰 확산되는 양상이다. 무엇보다 만성적 불경기 속에 제수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최근엔 조금 더 비용을 들여 대웅전 이외의 전각에서 별도로 차례를 모시는 ‘단독차례’를 원하는 세대가 증가일로라는 귀띔이다. 이세용 조계사 종무실장은 “부처님 앞에서 ‘여법하게’ 제사를 올림으로써 불자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계기도 된다”며 “단순히 차례를 넘어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용할 필요를 느낀다”고 말했다.
설날은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모두가 흥겨울수록 우울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외국인노동자들은 설날이 낯선 대표적인 소외계층이다. 불교국가별 정기법회를 열고 있는 양산 영축사(회주 각문스님)는 설날을 맞아 스리랑카 근로자를 위한 법회를 봉행할 예정이다. 부산 삼광사(주지 무원스님) 역시 타향에서 고생하고 있는 베트남인들을 초청해 잔치를 열어줄 계획이다. 1998년 IMF 이후 매주 평택역 노숙자를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펼치고 있는 평택 명법사(회주 화정스님)는 매년 설날 아침 평택역을 찾아 노숙자에게 떡국을 보시하며 훈훈한 정을 나누고 있다. 울산 해남사(주지 만초스님)는 설날을 앞두고 지역 아이들과 함께 윷놀이 등 전통놀이를 하루 종일 즐기는 어린이법회를 계획하고 있다.
불교계 복지관도 설날 아침 분주하다. 조계종무산복지재단(이사장 정념스님)은 양양군에 거주하는 1000여 명의 어르신들에게 점심공양을 대접하고 명절선물을 나눈다. 또한 군내 5개면 124개리 경로당을 직접 찾아 새해인사와 명절선물을 전한다. 광주 송광사회복지관(관장 도제스님)은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기로 해 눈길을 끈다. 이밖에도 전국의 사찰과 복지관에게 설날은 쌀과 생필품을 전달하며 중생구제를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한국의 대표적 관광문화상품인 템플스테이 역시 ‘설날 포교’에 이바지하고 있다. 설맞이 템플스테이는 주로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전통놀이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이와 함께 반야심경 사경, 108참회발원, 숲길걷기 명상 등은 연휴기간 동안 지친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서울 국제선센터(주지 탄웅스님)는 북한이탈주민과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템플스테이를 열어 이방인들의 향수를 달래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설날의 사전적 정의는 ‘음력 정월 초하루로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하며 덕담을 나누는 날’이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단지 ‘꿀맛 같은 연휴’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형편이다. 설날 맞이 다채로운 자비행에서 보듯, 사찰은 민족 고유의 정(情)과 미덕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는 결혼식과 환갑잔치 등 가정의 모든 의례를 절에서 치르도록 유도하는 대만 불광산사와 추석 한 달 전부터 당일까지 사찰성지순례를 나서는 일본불교의 풍습을 사례로 들며 ‘명절포교’의 다양화를 제시했다. “‘평생사찰’인 원찰(願刹) 개념을 도입해 차례뿐만 아니라 개인의 통과의례 전부를 사찰에서 대행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사찰이 적극 개발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불교신문3173호/2016년1월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