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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한 심우도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는 참가자. |
지난 12일 서울 국제선센터 대웅전 법당. 파란 눈동자를 가진 프랑스인 18명이 바닥에 좌복을 깔고 앉았다. “Hands together~ and bend forward(두 손을 모으고~ 앞으로 숙이세요), now three prostrations!(이제 3번 절합니다)."
사찰 예절을 배우는 시간, 천조스님의 설명에 따라 합장을 하고 삼배를 해보지만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건 모두 마찬가지다. 스님을 따라 예불문과 반야심경을 외워보지만 좌식(坐式) 생활에 익숙치 않은 습관 때문에 몸이 금세 배배 꼬인다. 그래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구슬땀을 흘려가며 열심인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매일 오전 2시간씩 무술 수련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국제선센터 |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 무술인들이 한국 불교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신기하면서도 정겹고, 이국적인 전통 사찰에서 심신을 단련하며 수행자의 생활과 한국의 전통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프랑스 카스텔노르레즈(Castelnau-le-Lez)에서 마샬아츠(martial arts)를 가르치고 있는 사범단으로 지난 11일 해외 연수차 한국을 찾았다. 18명의 사범들은 9박10일 동안 서울 국제선센터에 머물며 서울과 광주 등을 오가며 무당권과 회전무술, 택견 등을 연마하고 마음을 수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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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불의식을 따라하고 있는 참가자들. |
이날 첫 연수 프로그램으로 템플스테이 체험에 나선 사범단은 한국의 전통을 접하고 수행자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동자가 소를 찾아 나선 여행기를 10가지 그림으로 나타낸 심우도(尋牛圖, oxherding story) 퍼즐은 동심으로 돌아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시간이다. 각자 팀을 짜 10가지 퍼즐을 조각조각 맞추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다 보면 어느새 동자를 따라 깨달음을 찾아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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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선센터 주지 탄웅스님과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함께 자리했다. |
심우도의 8번째 퍼즐인 인우구망(人牛俱忘)을 'circle of life(인생의 순환)'라고 해석한 크리스토퍼 오위(50)씨는 “그림 속에 그려진 동그란 원이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며 “노인이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든, 어린아이가 노인의 모습을 하든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지금 내 마음을 잘 단련하면 원하는 무엇이든 찾을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천조스님은 “인우구망은 소도 사람도 없는 것, 즉 모든 것에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본성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안에 있는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님은 “프랑스인이든 한국인이든, 아프리카 사람이나 미국사람이나 상관없다”며 “스스로 행복이 지금 여기에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마음을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을 찾을 수 있고 또 그러한 참선 과정을 통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고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프로그램을 담당한 천조스님은 이날 이중통역으로 진땀을 빼기도 했다. 심우도 퍼즐과 인경 및 탁본 등의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영어에 익숙치 않은 사범단을 위해 스님이 영어로 설명하면 마이클 모제스카(52) 씨가 영어를 프랑스어로 다시 바꿔 말했다.
마이클 모제스카 씨는 “어려운 내용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줘 동료들이 잘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나 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무술인으로써 싸움은 눈 앞의 적이 아니라 내 안의 내 자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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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한 그림과 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천조스님. |
사범단장인 파스칼 루셀로(53)씨 등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15명의 사범들은 이번이 한국 첫 방문. 벌써 28번째 한국을 찾는다는 파스칼 루세로 씨는 국제선센터를 연수 장소로 선택한 것에 대해 "한국에 처음 오는 친구들이 많아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사찰을 택했다"며 “관광지나 쇼핑센터에 우르르 몰려가는 것보다 동료들과 함께 깨끗하고 한적한 곳에서 여러 가지 무술도 배우고 또 명상도 하면서 몸과 마음을 함께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파스칼 루셀로 씨는 "샤워실 등 현대적인 시설과 전통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웬만한 호텔이 부럽지 않다”며 “같이 온 친구들도 이틀 만에 한국의 매력에 푹 빠진 것 같아 좋다”고 했다.
이들은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난 후 남은 연수 기간 동안 국제선센터에 머문다. 매일 아침 인근 양천공원에서 포행을 하고, 오전 시간에는 합기선 등의 무술을 배운다. 사찰 예절을 습의해 사시예불에도 자유롭게 참가하며 사찰음식을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